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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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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의 비슷한 사례: 에르난 코르테스 === 원활하지는 않았어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은 꾸준히 교류를 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실크로드]]가 있고, 한반도 기준으로도 [[신라]] 시대 부터 [[서역]]과의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후한]]의 역사를 다루는 [[후한서]]에도 [[대진국]](로마 제국)이라는 명칭이 거론된다. 거기에 더해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이 [[중동]]을 갈아마신 것도 모자라 [[동유럽]]까지 침공한 적도 있었다. 즉, 상당히 생소하긴 해도 당시 유럽인들에게 '[[동양]]'이라는 개념 자체는 있을 수밖에 없었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만 해도 [[원나라]]를 다룬 서적이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를 발견하기 전까지, [[아메리카]](편의상 신대륙으로 서술)는 미지의 땅이었다. 실제로는 [[바이킹]]이 북아메리카에 진출했었고, [[빈란드]]가 있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이슬란드]]의 전설 수준으로 남아있었을 뿐,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편의상 구대륙으로 서술)에서는 전혀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 외에 [[베링 해협]]을 통해 [[축치인]]과 [[이누이트]]간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발굴되기도 했었지만[* Archaeological Institute of America(미국 고고학 연구소 AIA) 산하 잡지 ARCHAEOLOGY 기사 [[https://www.archaeologicalconservancy.org/evidence-pre-columbus-trade-found-alaska-house/|Evidence of Pre-Columbus Trade Found in Alaska House(알래스카 집터에서 콜럼버스 이전 교역의 증거가 발견되다)]] 출처.], 축치인이 거주하는 [[축치반도]]는 [[루스 차르국]]이 들어서고 나서야 러시아가 근처 지역을 복속시킨 수준이었다. 따라서 15세기 기준으로는 역시나 미개척 야만 지역으로 취급 받았다. 구대륙은 물론, 신대륙에도 다양한 원주민들이 존재하며 그들의 문화와 문명을 꽃피우고 살았다. 하지만 극히 일부의 민족을 제외하면 구대륙과 신대륙의 교류는 사실상 없었고, 교류가 있었다 해도 이미 그 흔적조차 없어졌거나, 당시 각 대륙의 주요 문명권에서 벗어난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수준이라 서로의 존재 자체를 모르던 상황이었다. 실제로도 구대륙인과 신대륙인은 '사람'이라는 카테고리만 같았지, 문화, 보유 자원, 기술 수준 모두가 달랐고, 대륙간 식생도 크게 차이가 있었다. 즉, 구대륙과 신대륙은 서로 '이세계'나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즉, [[스페인]]의 아메리카 진출은 사실상 이세계 진출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그 중에서 중요한 인물로 [[콩키스타도르]] 중에 한 명인 [[에르난 코르테스]]가 있는데, 이 사람이 처했던 상황과, 해낸 일은 현대 판타지에서 나오는 '성공한 이세계인'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침략자라는 점을 빼고 보면, 에르난 코르테스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데, 단순히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키고 중미를 정복한 정도가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말]]과 [[돼지]]를 포함한 가축을 보급하고, 철기를 도입했다. 가축의 사육은 식량(돼지), 노동력(말)과 직결되는 중요한 것이었고, 철기의 도입은 사실상 문화 혁명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선사시대를 분류하는 기본 지표가 도구의 재질인 것을 감안하면 철기의 도입만 해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코르테스는 자신이 지배하는 멕시코 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하며 식인과 인신공양을 없앴다. 전근대 사회에서 종교가 가지는 사회적 위치를 생각해 보았을 때, 에르난 코르테스는 '''완전히 한 문화권의 성향을 뿌리째 바꿔버린 것이다.''' 이게 코르테스가 [[멕시코]]에서 집권한 약 20여년간 발생한 일이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도 이렇게 빨리 사회를 바꾸진 못했다.[* 다만 식인제의를 할 수 있는 것은 군사력을 가진 귀족과 사제 계층만의 일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 대규모 식인제의가 가능했던 아즈텍은 멸망했고, 나머지 소국들도 코르테스와 이후 누에바 에스파냐 정부에게 복속하거나 동맹을 맺어야했던 상황에서 식인제의는 유지될 수 없었다. 민간에서의 아즈텍 신앙은 백여년 넘게 유지되었다.] 에르난 코르테스의 성공에는 비결이 있었다. '기병', '톨레도 산 강철검'으로 대표되는 선진 무기들로 우세를 점했다. 콩키스타도르는 [[레콩키스타]] 당시 성장한 정예 병력이었으며, 전쟁과 생존의 프로들이었다. 기마술, 사격술은 기본이고, 자원과 도구만 있다면 즉석에서 무기를 만들어 활용할 능력이 있었으며, 그 자원을 찾아낼 능력 또한 있었다. 이의 예로, 신대륙에 진출한 콩키스타도르들은 [[화산]]을 찾아다니곤 했다는데, 이는 [[화약]]의 원료인 [[유황]]과 [[초석]]을 찾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테노치티틀란]] 공략 당시 배를 만들어 띄워 공격하기도 했는데, 이는 에르난 코르테스가 거느린 콩키스타도르들이 조선술에도 능했었다는 증거가 된다. 단순히 무기의 우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우위를 계속적으로 유지할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에르난 코르테스는 용인술과 외교적 능력도 탁월했다. [[슬픔의 밤]] 당시, 코르테스는 재기불능의 상황까지 몰렸다. 레콩키스타에서 살아남아 성장했던 휘하 콩키스타도르들도 학을 떼서, [[틀락스칼라]]로 후퇴하는 것에 성공하자마자 [[베라크루스]]로 도망가자고 할 지경이었다. 이게 [[오툼바 전투]]의 대승 이후에도 이어진 분위기였으니 당시 콩키스타도르들이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알 법하다. 그러나 코르테스는 부하들을 휘어잡아 이후 테노치티틀란을 공략하는 것에 성공한다. 또한, 슬픔의 밤을 겪고도 [[틀락스칼텍]]과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물론 틀락스칼텍이 에르난 코르테스를 끝까지 지원한 것은 그들이 가진 아즈텍 제국에 대한 끝없는 분노와 증오 때문이긴 하였으나[* 틀락스칼텍의 전투력 자체는 약한 편이 결코 아니라서 아즈텍과의 꽃 전쟁 자체는 종종 이겼다. 그러나 꽃 전쟁 자체가 제의를 명분삼은 제한전이었기 때문에 틀락스칼텍이 이길수 있었던 것으로,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의 인구가 1,500만명을 간신히 넘던 1500년대에, 추정인구 최소 7만, 최대 20~30만 이상의 대도시인 [[테노치티틀란]]을 가지고 있던 아즈텍 제국을 틀락스칼텍이 전면전으로 이길 가능성은 희박했다. 아즈텍은 국력을 무기로 주변 국가에 공물과 꽃 전쟁을 강요하였고, 그 결과 메소아메리카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기록적인 패전 후에도 코르테스와 동맹을 유지했던 것은 분명 코르테스의 처신이 믿을 만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공한 후에도 코르테스는 신의를 지키려 노력했던 편으로, 틀락스칼텍은 어려운 선택으로 인한 달콤한 과실을 톡톡히 맛볼 수 있었다. 우직한 뚝심과 배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당시 콩키스타도르의 상당수는 높아봐야 입에 풀칠을 간신히 하는 하급 귀족이었으며, 그 외는 죄다 하류층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부와 성공에 대해 엄청난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카락]] 같은 범선 하나에 의지해[* 정말 커 봐야 배수량 1000톤 내외의 범선이다.] 개척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대서양]] 항로를 아득바득 기어왔을 정도니, 그 배짱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 시각으로 바다는 죽음의 장소나 다를 바 없었다. [[세이렌]]이 뱃사람을 홀려 바다에 끌고 들어간다거나, 아예 미친 바다괴물이 범선을 부순다거나 하는 온갖 미신이 횡행했다. 오직 성공 하나만 바라보고 그런 지옥에 뛰어든 것이다. 한편, 정복에 성공한 이후에는 본국으로부터 인력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왔다. 코르테스가 아무리 성공했어도, 스페인에서 지속적으로 인력이 들어온다는 메리트가 없었으면 정복자측이 피정복자의 문화에 녹아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유럽인들이 가져온 병균들도 이것에 한 몫 했다. 유럽산 질병은 지역에 따라서는 원주민 인구를 90% 나 줄여버렸고, 전파 속도 역시 유럽인들의 발보다도 빨라서 유럽인이 직접 발을 들여본 적 없는 마을과 도시들도 그 이전에 이미 유럽의 신질병으로 멸망한 경우도 흔했다. 실제로 바로 남쪽의 잉카 제국은 아즈텍에 비해서 훨씬 원주민 인구 비율이 컸고 스페인인의 지속적인 인구 유입도 적었던 결과, 아직도 [[페루]] 지역은 원주민 국가로써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반면, 이 문서에서 상정하는 일반적인 현대인은 어떤가? 운동부족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당장 완력과 체력부터 걱정해야 한다. 고된 농사일, 혹은 군사 훈련에 찌들어 살던 중세, 근세 사람들에게 있어 대다수 현대인의 체력은 운동부족 도련님 이상이 되질 못한다. 콩키스타도르와 같은 냉병기 전투능력?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작물 같은 경우, 미리 무도를 수련한 현대인을 상정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하지만, 중근세에 싸움으로만 밥 먹고 살던 군인들과 상대해서 잘 싸울 수 있을리 없다. 기술적 문제도 한 몫 한다. 물론 현대인들이 배운 것은 많기에 당시 사람들보다는 아는 것도 많고, 눈도 높은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경우, '철기를 쓰면 좋지', '화약은 정말 강하지', '기병은 근세까지 무적의 병종!' 같은 피상적 지식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앞서 콩키스타도르들이 한 것과 같은 '제대로 된 철기를 만드는 방법', '화약 배합법', '기마술, 가축의 번식 및 운용법' 같이 정말 이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있어 필요한 실용적 지식과 기술은 하나도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관분야 전공자라도 중근세 시기에 확보할 수 있는 자원만 가지고 해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 밖에 없다. 뚝심과 배짱 같은 정신무장도 문제가 된다. 오히려 생존 문제라면 이쪽이 정말로 중요하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고 아득바득 살아나와 [[기적]]이 존재함을 선보인 경우는 결코 드물지 않다. 우발적으로 휩쓸린 현대인에게 이런 정신무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세계로 가서 그곳을 뒤집어 놓는 현대인은 의외로 실제 역사 사례에서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에르난 코르테스는 그 시대의 '''철저히 준비된 현대인'''이었던 것이다. 또한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었다는 점, 구세계와 연결이 지속되었다는 점 등의 요소가 있었고, 그러한 점이 없다고 가정되는 당신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어려운 일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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